지식재산권(IP)·특허관리의 AI 전환 — 특허 출원과 침해 모니터링에서 나타나는 변화
지식재산권(IP) 관리는 특허 출원·심사 대응과 상표·브랜드의 침해 모니터링이라는, 성격이 꽤 다른 두 업무로 나뉜다. 둘 다 문서량이 많고 반복적인 패턴 매칭이 많다는 점에서 생성형 AI가 들어갈 자리로 자주 지목되지만, 실제 도입 속도와 검증 수준은 영역마다 다르다. IP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퀘스텔(Questel)이 2026년 4월 발표한 연례 설문에서는 500명이 넘는 IP 전문가 가운데 83퍼센트가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AI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2025년 조사의 77퍼센트보다 늘어난 수치이며, 73퍼센트는 AI가 IP 직무를 영구히 바꿀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59퍼센트는 2026년 IP 기술 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는데, 숫자만 보면 도입이 빠르게 퍼지는 영역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성과의 실체다.
특허 쪽: 정부 기관까지 나선 선행기술조사 자동화
특허 출원·심사 대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민간 벤더가 아니라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서 나왔다. USPTO는 2025년 10월부터 2026년 4월까지 '자동 검색 시범 프로그램(Automated Search Pilot)'을 운영했다. 출원서의 분류 코드(CPC)와 명세서, 청구항을 내부 AI 시스템이 분석해 관련성이 높은 선행기술 문헌을 최대 10건까지 순위를 매겨 출원인에게 미리 통보하는 방식이다. 심사관이 검토하기 전 단계에 AI를 끼워 넣어 출원인이 스스로 청구항을 조정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고, 시범 기간 중에는 신청 수수료도 면제했다. 한국에서도 지식재산처가 2026년 '지식재산인공지능전환추진단'을 신설했고, 2023~2027년 중장기 로드맵에서 '세계 최고의 AI 기반 심사·심판 체계 구축'을 핵심 목표로 내걸었다. 특허청은 이미 2022년부터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협력해 특허 문헌 500만 건을 학습 데이터로 삼은 AI 추천 선행기술 문헌을 심사에 활용해왔고, 로드맵에는 번역문을 활용해 검색 범위를 미국·유럽 특허문서까지 넓히는 계획도 들어 있다.
민간 쪾에서는 딥아이피(DeepIP), 패트리틱스(Patlytics), 솔브 인텔리전스(Solve Intelligence) 같은 스타트업이 청구항 초안 작성과 심사관 거절 의견(오피스 액션) 대응 초안을 생성하는 도구를 내놓고 있다. 이 분야에 들어오는 자본도 뚜렷하다. 패트리틱스는 2026년 4월 4천만 달러(약 58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딥아이피는 같은 해 3월 2천 5백만 달러(약 360억원) 규모의 시리즈 B를 받은 뒤 6월에는 경쟁 도구인 패턴메이커(PatentMaker)를 인수했다. 다만 이 영역에서 공개된 성과 수치는 거의 전부 벤더 자신이 발표한 것이다. 딥아이피는 자사 플랫폼이 특허 초안 1만 2천 건, 오피스 액션 대응 1만 1천 건을 지원했고 전년 대비 이용 전문가가 200퍼센트 늘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매출을 올려야 하는 회사의 자체 집계다. 독립된 제3자가 측정한 비용 절감률이나 심사 통과율 개선치는 아직 찾기 어렵다.
상표·브랜드 보호: 마켓플레이스 전체를 훑는 자동 감지
상표 침해 모니터링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레드포인츠(Red Points), 코서치(Corsearch), 마크비전(MarqVision) 같은 업체들이 키워드 검색 대신 이미지 인식 기반 AI로 전 세계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상시로 훑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마크비전은 자사 도구가 115개국 1,500개 이상의 마켓플레이스에서 위조품을 자동으로 탐지한다고 밝혔고, 코서치도 비슷한 규모의 네트워크로 의심 게시물을 상품이 실제 판매되기 전에 걸러낸다고 설명한다. 로고를 살짝 변형해 키워드 필터를 피하는 수법에는 시각 인식 AI가 효과적이라는 설명도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다만 이 영역 역시 탐지 건수나 차단율을 공개하는 쪽은 서비스를 파는 업체들이고, 독립적으로 집계된 벤치마크는 확인되지 않는다.
퀘스텔 설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난다. 2025년 조사에서 상표 업무 가운데 AI를 가장 많이 쓰는 영역은 상표 검색(91퍼센트), 상표 감시(53퍼센트), 거절 의견 대응 관리(51퍼센트) 순이었다. 즉 '찾아내는' 업무에는 AI가 이미 깊이 들어갔지만, 찾아낸 뒤의 법적 판단과 집행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재무적으로는 아직 이른 단계
계약서 검토처럼 수치로 증명된 법무 AI 사례와 비교하면, IP 영역은 아직 한 단계 뒤처져 있다. 외부 특허법률사무소에 맡기던 선행기술조사·초안 작성 비용과 상표 침해 모니터링 용역비가 줄어들 여지는 분명히 있고, 그만큼 출원 건수가 늘어도 IP 인력을 같은 속도로 늘리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인용한 수치 대부분이 벤더 자신의 공개치이거나 설문 응답이지, 공개 재무제표나 실적 발표에서 손익 항목 단위로 확인된 절감액은 아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절감 추정치를 제시하는 대신 "어느 비용 항목이 움직일 여지가 있는가"까지만 짚는 게 맞다.
더 근본적인 비판도 있다. 2026년 7월 한 분석은 USPTO의 자동 검색 시범 프로그램이 출원 초기 단계의 검색 속도를 높여도 전체 심사 기간(펜던시)을 꼭 줄이지는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정확한 선행기술을 일찍 발견할수록 오히려 보정이나 항소 절차가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청구항 작성 자체를 AI가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업계 의견은 엇갈린다. IP 소프트웨어 업체 딥아이피의 글을 인용한 보도에서도 미국 뉴저지주 대법원 산하 윤리 위원회 소속 한 위원은 "청구항 작성은 자동화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고 전해졌다. 또한 퀘스텔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43퍼센트가 자사 IP 관리 시스템을 다룰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는데, 이는 도구를 들여놓는 것과 그 도구를 실제로 잘 쓰는 조직 역량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특허청 단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AI 선행기술조사 인프라를 쌓아온 편이다. 2022년부터 쌓인 학습 데이터와 2027년까지의 로드맵을 보면 정부 쪽 심사 인프라는 해외 사례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사내 IP·특허 부서,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특허 출원이나 상표 관리 업무에서 AI 도구를 실제로 쓰는 사례는 아직 해외 사례만큼 축적되지 않았다. 해외 동향이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첫째, 선행기술조사와 상표 모니터링처럼 '찾아내는' 업무는 기술적으로 이미 성숙했으니 먼저 들여도 무리가 없다. 둘째, 청구항 작성이나 거절 의견에 대한 최종 대응 전략처럼 법적 판단이 들어가는 업무는 해외에서도 아직 벤더의 주장과 독립적 검증 사이에 간극이 있으므로, 사람의 최종 검토를 건너뛰는 설계는 이르다는 점이다.